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 및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박정희 유신독재체제에 반대한 시위사건인 부마항쟁이 올해로 44주년을 맞이한다. 10월 16일은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으며 올해는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5회째를 맞이한다고 한다.
내용 요약
- 부마민주항쟁 - 유신체제에 반대한 부산, 마산 등지에서 일어난 시위
- 계엄군에 의해 일 주일 만에 시위는 중단되었지만 10·26 사태의 결정적 계기가 됨
- 올해로 44주년을 맞이함
부마민주항쟁이란?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마산시(현 소재지: 창원)에서 박정희의 유신 체제에 대항한 시위가 일어난 사건을 말한다. 부마민주항쟁은 부마항쟁, 부마사태라고도 불린다.
유신체제
그럼 유신체제는 무엇일까? 유신체제는 1972년 10월 17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한 것을 말한다. 이 선언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4가지 비상조치를 발표하고 헌법을 개정했는데, 이때의 헌법을 유신 헌법이라 한다. 또한, 유신 헌법이 발효된 기간을 유신체제라고 부른다.
부마민주항쟁의 발발
당시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유신철폐"의 구호와 함께 시위를 시작했고 17일부터는 시민 계층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18일과 19일에는 인근의 마산 지역까지 시위가 확대되었다. 당시 박정희 유신정권은 10월 18일 오전 12시를 기해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10월 20일에는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선포하고 군을 출동시켜 민간인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부마민주항쟁 진압
당시 부산, 마산에는 육군 특전사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3 공수특전여단, 해군 제1해병사단 등 계엄군이 들어왔다고 한다. 특히 부산에 있던 계엄사령관과 3 공수 특전여단장, 전두환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은 소요사태에 대한 빠른 진압을 계획했다고 한다. 증언에 의하면 당시 계엄군의 진압이 매우 폭력적이고 잔인해 사망자도 다수 나왔다는 진술이 있기도 하다. 이런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작전으로 시위는 차츰 진정되어서 10월 23일 부산 마산 통행금지가 환원되는 등 서서히 평온을 되찾아갔다고 한다.
부마민주항쟁의 의의와 10.26
부마민주항쟁의 의의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정권 내 갈등이 폭발하였으며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사건으로 긴급조치로 유지되던 유신체제는 붕괴하게 되었으며, 10월 26일 10·26 사건이 발생해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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